부서진 사월 - 서평 no.2
아호파파

부서진 사월
소설/시/희곡이스마일 카다레
지붕에는 1년 반째 핏자국이 누렇게 변색된 셔츠가 걸려 있다.
핏자국이 갈색으로 변하면 변할수록, 망자가 괴로워하고 있다는 징조로 여기며 피의 복수를 해야 한다고 마을 사람들은 말한다.
26살 청년 그조르그 베리샤는 반나절째 경사지에 엎드려 총을 겨누고 있다.
형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다. 그조르그는 마음속으로 옛말을 되뇐다.
"쏘는 것은 사람이지만, 살인을 하는 것은 총이다."
탕.
그자가 고꾸라진다.
그조르그는 시체에 다가가, 엎어진 몸을 반듯하게 뒤집어 놓고, 머리맡에 죽은 자의 총을 놓는다. 관습법이 시킨 대로.
그는 시신 앞에 무릎을 꿇으며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되묻는다.
"내가 뭘 하려는 거지?"
이스마일 카다레의 소설 『부서진 사월』은 수백 년간 산악지대를 지배해온, 국가의 법보다 위에 있는 관습법 '카눈'이 다스리는 세계를 그린다.
그리고 그 제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폭력을 비춘다.
제도라는 굴레 안에서 개인의 의지가 얼마나 연약한지를 보여주려는 의도가 소설 전체적으로 느껴지는데, 실제로 카다레는 알바니아 출신 작가로서 전체주의가 극에 달했던 사회주의 정권 아래에서 8살부터 54살까지 글을 썼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미션은 딱 하나, '내 글이 검열에서 살아남는 것'이었다.
실제로 카다레 저서 『꿈의 궁전』은 검열로 출간이 금지당한 적도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은 카눈이라는 알레고리를 통해 전체주의 시스템의 부조리를 말하고 있다.
소설 속에서 카눈이라 불리는 관습법은 이해하기 어려운 규칙들로 세세하게 짜여 있다.
가문 사람, 혹은 우리 집에 묵은 손님이 살해당하면 대신 복수해야 한다.
살해 후엔 장례식에 찾아가 자기가 죽인 자의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해야 한다.
복수 후엔 '베사(besa)'라는 한 달간의 휴전이 성립되면, 그동안은 복수를 되갚을 수 없다.
복수를 마치면 오로시 성에 500그로셴의 피의 세금을 갖다 바쳐야 한다.
이런 관습법 아래 놓인 주인공 그조르그의 가문에는 몇백 년에 걸친 복수의 굴레 속에서 44개의 무덤이 쌓였다.
형의 복수를 위해 살인을 저지른 그조르그 역시 자신이 왜 이 복수를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몇백 년 전부터 선조들이 해온 일을 자기도 따를 뿐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피의 복수를 마친 그에게 주어진 30일의 유예.
그 시간이 지나면 이번에는 그가 방금 죽인 가문의 총부리가 그를 향하며 또 다른 복수가 돌아올 뿐이다.
"피의 법칙은, 누군가에게 행동의 자유를 주더라도 한동안은 그 틀 속에 그의 영혼을 붙들어 놓는다."
— 이스마일 카다레, 『부서진 사월』 중에서
행동은 자유인데 영혼은 잡혀 있다.
카눈은 외부의 강제보다 내부의 점령이 개인과 사회에 끼치는 무서움을 보여준다. 사람들이 믿고 따르도록 카눈의 규범을 만들고, 그것이 가문의 명예를 보전하는 길이라 여기게 하고, 카눈을 따르는 것이 옳다고 온 사회가 말하게 한다. 카눈을 어기고 규칙을 깬 집은 마을 사람 전체가 몰려가 불을 질러 초토화시켜버린다. 그렇게 아무도 이 관습법에서 빠져나오려 하지 않게 만들고, 체제는 유지된다.
소설 속 주인공 그조르그 또한 그자를 왜 죽여야 하는지 이해도 못 한 채, 아버지가 시키니까, 카눈이 명령하니까, 기계처럼 방아쇠를 당긴다.
납득도 못 한 채 시키는 대로 따라야 하고, 어기면 가족까지 처벌받는 이 설정은 사실은 전체주의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책은 이 불행의 굴레로 누가 혜택을 받는가도 잘 보여준다.
이 관습법의 최대 수혜자, 그래서 이 관습법을 지키려 애쓰고 지지하는 자는, 사람들이 흘린 피를 돈으로 환산해 세금을 걷는 자, 바로 피 관리인이다.
"이번 분기 피의 세금이 줄었다"며 전전긍긍하는 피 관리인 마르크 우카시에르에게 사람의 목숨은 그저 실적 그래프 위의 숫자다. 산 아래에서 누군가 총에 맞아 쓰러질 때마다 성의 금고에는 500그로셴이 쌓인다. 관습법이라는 체제를 통해 누리는 자가 있고, 그것을 누리는 자가 이 체제를 계속 유지 지킨다.
이 책에서 복수극이라는 외피를 쓴 채, 폭력을 제도화해서 누리는 권력의 구조를 정확히 그려낸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소설에는 또 다른 시선들이 등장한다.
수도에서 온 작가 베시안과 그의 신부 디안 부부다.
두 사람은 신혼여행지로 이 고원지대를 택한다.
베시안에게 카눈은 비극이 아니라 문학적 소재다. 그는 마차 안에서 아내에게 카눈이 얼마나 위대한지, 이 산악지대가 얼마나 숭고한지를 끝없이 강의한다.
사람이 죽어나가는 제도도, 안전한 마차 창문 너머에서 바라보는 자에게는 한 편의 서사처럼 보이는 것이다.
소설은 이 부부를 통해 체제를 미화하는 지식인들을 지적한다. 굴레 안에서 직접 살지 않아도 되는 사람일수록 체제를 낭만적으로 포장한다. 굶는 사람 옆에서 혁명의 숭고함을 논하고, 죽어가는 사람 옆에서 전통의 아름다움을 말한다. 베시안의 강의가 길어질수록 독자는 점점 불편해지는데, 그 불편함이야말로 작가가 노린 지점일 것이다.
디안은 다르다. 여행 중 길에서 우연히 스쳐 지나간 그조르그의 창백한 얼굴을 본 뒤, 그녀에게 남편의 강의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추상적인 '관습법의 세계'가 아니라, 죽음을 한 달 앞둔 스물여섯살 청년의 눈빛이 실체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카논이란 체제는 멀리서 보면 하나의 관습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한 사람의 죽음이다. 디안가 점점 말을 잃어가는 동안, 베시안의 말은 점점 공허해진다.
같은 상황을 보고 다른 것을 느끼는 신혼 부부 베시안과 디안를 통해 체제를 미학으로 포장하는 지식인의 시선과 고통을 받는 사람 그 자체를 보는 시선으로 대비를 통해 나타낸다.
반쪽 짜리 자유, 30일
그조르그는 베사(합의한 휴전)가 보장하는 30일 동안 피의 세금을 내러 길을 떠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여정은 그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자기 발로 걷는 길이다. 태어나서 줄곧 가문과 카눈이 정해준 역할만 수행해온 청년이, 죽음을 한 달 앞두고서야 처음으로 낯선 길과 낯선 풍경과 낯선 사람을 만난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마차를 타고 지나가는 디아나를 본다. 그조르그는 남은 날들을 그녀를 찾아 산길을 헤매는 데 쓴다.
복수의 기계로 살아온 사람이 죽음 앞에서야 처음으로 무언가를 욕망하는 것이다. 체제가 영혼을 붙들어 놓아도, 인간 안의 무언가는 끝내 제 것을 찾아 움직인다는 듯이. 그러나 그 욕망에 허락된 시간은 4월 17일까지다.
그래서 제목이 '부서진 사월'이다. 그조르그의 사월은 반으로 부서져 있다. 17일까지는 산 자의 시간이고, 그 이후는 죽음을 앞둔 시간이다.
이는 '조건부로 허락된 삶'인데, 이것이 전체주의가 부여하는 자유와 같다. 자유란 권리가 아니라 체제가 잠시 빌려주는 것이라는 관점이다.
체제가 개인에게 허락하는 자유란 딱 이만큼 즉, 반쪽짜리 자유를 '부서진 사월'이라는 제목으로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이런 질문이 하나 남는다.
우리의 카눈은 무엇인가
카눈은 정말 소설 속 산악지대에만 있는가.
납득하지 못한 채 따르는 규칙.
'원래 그런 것'이라는 말로 굴러가는 시스템.
어기면 나 하나가 아니라 내 가족, 내 소속까지 불이익을 받는 제도.
그리고 그 구조를 조종하는 누군가.
어쩌면 우리가 속한 사회 어딘가에도 카눈들이 있을 수 있다.
그조르그는 방아쇠를 당기고 나서야 물었다.
"내가 뭘 하려는 거지?"
이 소설은 우리에게 그 질문의 순서를 바꾸라고 말하는 것 같다.
당기기 전에, 따르기 전에, 먼저 물으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