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기원 — 희지의 서평
희지

행복의 기원
인문학서은국
예전에 한 번 읽었던 책이다.
행복을 진화론적 관점으로 풀어내는 접근이 신선했고, 과학적으로 파고드는 첫머리에 호기심이 확 끌렸다.
그런데 결론에 가까워지자 고개가 갸웃해졌다.
진화론적으로 쌓아올리다가, 결국 행복은 사회적 관계 안에서 온다는 결론으로 착지하는 게 뚱딴지 같았다.
자기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무리한 결론을 낸 것 같다.
혼자만의 고독 속에서도, 자연 속에서도 행복을 느끼는 사람은 분명히 있는데, 그런 행복은 왜 빠져 있는 건지.
월든의 소로를 떠올리면 자급자족 속 평온이 가능해 보이지만, 실은 그도 지척에 어머니가 살았고 오두막에 사람들을 불러 파티까지 했다더라.
완전한 고립 속 행복이란 게 정말 가능한지는 나도 확신이 없다.
그래도 동의하는 대목은 있었다.
"불행한 사람에게 생각을 바꾸라는 것은 손에 못이 박힌 사람에게 아프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조언하는 것과 비슷하다"(8장, '행복을 위한 지침들') — 이건 진짜 그렇다.
내 주변에 힘들어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참으면 지나갈 거야, 좋게 생각해" 같은 말이 너무 힘들다고 하더라.
바닥에 있는 사람에게는 폭력적인 위로가 된다.
그래서 나는 그 친구에게 그런 말을 절대 안 했다.
차라리 "그럴 수도 있지, 어쩔 수 없지"가 가장 무난한 핵심이 아닌가 싶다.
긍정적 사고로 불행을 해결하려는 건 정말 되기 힘들어 본 사람의 입장에서는 불가능한 요구다.
쾌와 불쾌도 흥미로웠다.
저자는 "쾌와 불쾌의 감정은 나설 때와 물러설 때를 알려주는 생존 신호등이다"(4장, '행복의 숨겨진 기능')라고 쓰는데, 진화론에 맞추려는 억지스러움이 느껴지면서도 틀린 말은 아니다.
나도 불쾌한 감정이 나를 보호할 때가 있다.
싫은 투의 말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둔다.
스트레스 받기 싫으니까.
반면 나에게 쾌란 시간을 의미 있게 썼느냐의 문제다.
드라마를 봐도 "시간 버렸다" 싶으면 불쾌로 가고, 책을 읽다 머리가 아팠더라도 "시간 버리진 않았다" 싶으면 남는 게 있다.
야식도 마찬가지다.
먹으면서는 행복하지만 먹고 나면 "아 괜히 먹었다" 싶을 때, 그건 완벽한 행복이 아니다.
쾌와 불쾌가 한 경험 안에서도 공존한다.
"행복의 핵심은 부정적 정서에 비해 긍정적 정서 경험을 일상에서 더 자주 느끼는 것이다"(5장, '행복의 조건들') — 이 말에는 동의한다.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는 말은 좋은 말이다.
빈도가 잦으려면 행복이 작아야 한다.
큰 행복이 매일 올 수는 없으니까.
나는 매일 신문을 읽고 달리기를 한다.
그 루틴을 하나하나 해냈을 때, 오늘 하루가 그렇게 망치지는 않았다는 느낌이 나의 소소한 기쁨이다.
과거의 큰 기쁨을 추억하면서 느끼는 만족감과 안도감도, 지금 이 순간 느끼는 감정 자체는 작은 기쁨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행복의 필요조건이 사회적 관계라는 결론은 여전히 불편하다.
저자는 "차이는 오직 두 가지 영역에서만 나타났다.
첫째, 성격.
둘째, 대인관계"(8장)라고 쓰며 외향인이 행복하다고 하는데, 이 전제 자체가 잘못됐다고 본다.
요즘은 내향인과 외향인으로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는다.
'이향인'이라는 개념도 있고, 나도 거기 가까운 것 같다.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는 주제로 이야기할 때 즐거운 것이지, 외향적이어서 즐거운 게 아니다.
이 독서 모임이 그렇다.
어디 가서 할 수 없는 이야기를 열띠게 나눌 때 즐거웠던 건 외향성 때문이 아니라 공감의 에너지 때문이다.
사람이 있는 곳에 간다고 행복한 게 아니라, 내가 공감할 수 있는 무리에 가는 게 행복을 준다.
이 책을 덮으며 든 생각이 있다.
뒤센의 미소 연구처럼, 사람들은 행복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고 싶어 한다.
행복 버튼이 있다면 누르고 싶은 거다.
이렇게도 접근해보고 저렇게도 접근해보지만 속 시원한 결론은 없다.
감정이란 건 컨트롤하기 어렵고, 그래서 가장 정복하기 어려운 것이 행복인 것 같다.
나만 어려운 게 아니라 다 같이 어려운 거니까, 각자 찾아가 보는 수밖에.
5점 만점에 4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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