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놓는 연습이 나의 조용한 기쁨이 될 수 있을까
희지

행복의 정복
인문학버트런드 러셀
예전에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꽤 좋게 읽었다. 그래서 독서 모임을 계기로 다시 한 번 펼쳤는데, 솔직히 처음 읽었을 때만큼 그렇게 가슴에 와닿지는 않았다. 나이를 먹은 탓인지, 아니면 그 사이에 내가 이미 러셀이 말하는 것들을 몸으로 겪어버린 탓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두 번째 읽기는 첫 번째와는 다른 방식으로 나를 들여다보게 했다.
러셀이 경쟁에 대해 쓴 부분에서 나는 오래 멈추었다. "사람들이 생존을 위한 투쟁이라고 말하는 것은 실제로는 성공을 위한 투쟁이다. 투쟁을 벌이면서까지 두려워하는 것은 내일 아침을 먹지 못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이웃 사람들보다 우월해지지 못한다는 사실인 것이다"(1부, '경쟁'). 나는 첫째 아이를 키우는 동안 끊임없이 경쟁했다. 남의 아이와. 아이가 대학에 가면 내가 바라던 모습이 될 줄 알았는데 엉뚱한 모습을 보여주더라. 그때부터 내가 놓쳤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경쟁에 이기려는 마음만 주입시키면서 아이와의 정서적인 교감을 희생시켰다는 것. 그 시절을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러셀이 마지막에 던진 한 마디가 마음에 남았다. "건전하고 조용한 기쁨을 삶의 조화로운 이상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것"(1부, '경쟁'). 나에게 조용한 기쁨이란 좋은 체념을 연습하는 일이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없으면 제대로 돌아갈 수 없는 사람이다. 주말을 보내고 나면 월요일에는 친정 엄마한테도 전화하지 말라고 한다. 음악도 안 듣고 아무것도 없는 고요한 상태로 하루를 보내야 일주일을 살 수 있다. 러셀은 "행복한 삶은 대부분 조용한 생활이어야 한다. 참된 환희는 오직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1부, '권태와 자극')라고 썼는데, 이 문장을 읽으면서 심심하다는 걸 느껴본 적이 없는 내가 떠올랐다. 나는 고요가 지루한 것이 아니라 충전되는 것이었다. 카페에서는 글을 못 쓰고 도서관에서 썼던 것도, 소음에 취약한 나의 특성이다.
그런데 현대인의 피로는 결국 관계에서 온다. 가족이든, 친구든, 모임이든, 내가 속한 모든 관계에서 크고 작은 문제들이 생긴다. 아이 하나는 대학에 갔고 하나는 고등학교 1학년인데, 육아의 피로가 반으로 줄어들 줄 알았다. 아니더라. 이건 그냥 내가 그들로부터 한 발자국 떨어져서 있어야 되는 문제다. 유체 이탈한 것처럼 저기 안에는 내가 있지만 그 밖에서 나를 바라본다. 그래, 사는 게 뭐 그럴 수 있지. 그렇게 내려놓고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는 것, 거기서 해결책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다만 이 책에서 나와 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러셀은 죄의식을 내려놓으라고 했다. "죄의식은 바람직한 생활의 원인이 되기는커녕 그 반대이다. 죄의식은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고, 열등감을 준다"(1부, '죄의식'). 나는 이해한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70대이고, 언니는 외국에 살고, 엄마는 전적으로 나한테 마음을 의지한다. 바빠서 엄마와 시간을 잘 못 보내는 게 항상 죄의식처럼 마음에 있다. 나 혼자 이 죄의식을 버린다고 해서 행복해질 수 있을까. 나를 애타게 찾는 엄마를 보면서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을까. 이 부분에서는 러셀이 나와는 좀 안 맞나 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 책을 다시 읽으며 가장 또렷해진 것은, 내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하는 물음이었다. 나는 죽을 때까지 마음에 하나 남기고 싶은 게 있다면 연민이다. 연민 덩어리였으면 좋겠다. 부족해서 미운 짓을 하는 사람도, 그래 쟤도 저런 부분이 힘들었으니까 저러는 거겠지, 하고 바라봐 줄 수 있는 마음. 말이나 무엇으로도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앞으로 추구할 사랑이고, 러셀이 말한 "자아라는 감옥으로부터 벗어난 사람"(2부, '사랑')의 모습에 가장 가까운 길이 아닐까 싶다. 조용한 기쁨과 좋은 체념, 그리고 연민. 이 세 가지를 품고 50대를 좀 재미있게 살아보고 싶다.
관련 서평

밖을 향할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 — 『행복의 정복』을 읽고
이 책을 읽으면서 자꾸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행복에 대해 이렇게 실용적으로 이야기하는 철학자가 있다는 게 신선했고, 백…

고요함 속에서 찾은 나의 것 — 『행복의 정복』을 읽고
솔직히 요즘 너무 바빠서 책 읽을 시간을 내기가 정말 어려웠다. 그래도 러셀의 이야기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 꽤 있었다.…

『행복의 정복』을 읽고
나는 워킹맘이다. 아침에 아이들 학교 보내고, 회사에서 일하고, 저녁에 또 육아를 한다. 그러다 보면 정작 나를 위한 시간은…

만족이라는 이름의 힘 — 『행복의 정복』을 읽고
솔직히 이 책이 처음부터 깊이 와닿지는 않았다. 나는 이미 70대 중반이고, 러셀이 짚어주는 불행의 원인들 — 경쟁, 권태,…

행복의 정복 — 백수광부의 서평
나는 요즘 다 그냥 순수하게 책을 읽는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독서가 아니라, 호기심이 생겨서 읽는 쪽이다. 그런 내가 『…

경쟁의 한가운데서 행복을 묻다
솔직히 얇아서 금방 읽겠구나 싶어서 밀어뒀다가 벼락치기로 겨우 읽었다. 그런데 철학 책이라 생각보다 훅 넘어가지 않았다. 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