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의 한가운데서 행복을 묻다
똑똑한 호구

행복의 정복
인문학버트런드 러셀
★★★★★솔직히 얇아서 금방 읽겠구나 싶어서 밀어뒀다가 벼락치기로 겨우 읽었다. 그런데 철학 책이라 생각보다 훅 넘어가지 않았다. 나의 나태함을 또 한 번 반성하게 된 셈이다. 다만 주제 자체는 정말 좋았다. 삶을 살면서 행복에 대한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으니까. 지치고 힘들 때마다 삶이 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데, 이 오래된 책이 그런 질문 앞에 나를 세워놓았다.
나는 지금도 경쟁 상태에서 살고 있다. 사기업에 들어가지 말았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주기적으로 한다. 이전 직장은 조직이 작아 경쟁이랄 것도 없었는데, 큰 조직으로 옮겨오니 대기업이란 원래 이런 거구나 하고 피부로 느끼게 됐다. 살아남기 위한 경쟁이다. 팀이 더 잘 되기 위한 경쟁이 아니라 자리를 지키기 위한 경쟁. 다리가 몇 개 안 남은 의자 위에서 눈앞의 생존만 보게 되는 구조. 러셀은 이런 상황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사람들이 생존을 위한 투쟁이라고 말하는 것은 실제로는 성공을 위한 투쟁이다. 투쟁을 벌이면서까지 두려워하는 것은 내일 아침을 먹지 못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이웃 사람들보다 우월해지지 못한다는 사실인 것이다"(1부, '경쟁'). 읽는 순간, 내 상황이 그대로 적혀 있는 것 같아 한참을 멈추고 있었다.
한때 일에 미쳐 있던 적이 있다. 전 직장에서 밤 12시가 넘어도 지치지 않았다. 성장하는 느낌에 중독됐던 것 같다. 그때 다른 부서의 한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 아니면 그렇게까지 열심히 일하지 말라"고 했고, 그 말이 너무 기분 나빠서 사이가 멀어졌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었다. 눈앞의 것 하나만 보고 드라이브를 걸어대던 나를, 그 사람이 찬물을 끼얹어준 셈이었다. 지금은 그 친구와 절친이다.
문제는, 일에 대한 열의가 식은 뒤에 다른 열의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러셀이 쓴 열의 챕터에 시골길을 걷는 사람들 이야기가 있다. "어떤 사람은 새에, 어떤 사람은 야채에, 어떤 사람은 지질에, 어떤 사람은 농업에 흥미를 느낄 것이다"(2부, '열의'). 나는 주말마다 부모님 댁에 내려가서 같이 산책을 하는데, 같은 루트를 매일 도는 80대 부모님도 봄에는 꽃을, 여름에는 나무를 본다. 관심에 따라 보이는 게 달라지시는구나, 하고 깨달았을 때 열의라는 것이 거창한 게 아닐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한편, 러셀이 죄의식을 버리라고 한 대목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나는 쇼츠에 빠진 나, 글을 쓰지 못하는 나를 보면서 죄의식을 느낀다. 그런데 그 죄의식과 반성이, 결과적으로 나를 조금이라도 나은 쪽으로 밀어주는 힘이 되기도 한다. 러셀은 "죄의식은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고, 열등감을 준다"(1부, '죄의식')고 썼지만, 나에게 죄의식은 전적으로 병이라기보다 자기 점검의 도구이기도 하다.
직장에서의 피로, 사람 관계에서의 소진을 나는 '단절'로 버티고 있다. 소음은 소음으로 막고, 서울 생활은 시골 생활로 막는다. 러셀도 비슷한 말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적절히 통제하지 못한다"(1부, '피로'). 서투른 게 당연하구나, 하고 읽으면서 조금 위로가 됐다. 직접적인 요인을 해결하지는 못하더라도 삶에 변주를 주는 것, 그것이 결과적으로 피로를 완화한다는 걸 나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러셀은 이 책에서 소크라테스, 아우렐리우스를 거쳐 자기 자신의 경지까지 행복의 단계를 그려놓은 것 같다. 나는 아마 2단계에서 3단계로 넘어가고 있는 어딘가에 있다. 그래서 러셀이 말하는 것들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책이 쓸모없다는 뜻은 아니다. 나 같은 미생에게 이 책은, 답을 주기보다 질문을 선명하게 해주었다. 경쟁 속에서 잃어버린 건강과 여유, 식어버린 열의, 그리고 아직 찾지 못한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 그 질문들을 안고 살아가는 게 어쩌면 행복을 정복하는 과정의 일부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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