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복 — 백수광부의 서평
백수광부

행복의 정복
인문학버트런드 러셀
나는 요즘 다 그냥 순수하게 책을 읽는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독서가 아니라, 호기심이 생겨서 읽는 쪽이다. 그런 내가 『행복의 정복』을 펼쳤을 때, 솔직히 러셀이라는 100년 전 사람이 지금의 나를 이렇게 정확히 꿰뚫어볼 줄은 몰랐다.
이 책에서 가장 먼저 마음에 걸린 건 권태와 자극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는 따분할 틈이 없는 사람이다. 오히려 따분함을 한번 느껴보고 싶을 정도다. 밥을 먹으면서도 뭔가를 집어넣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다. 강연이든, 정보든, 코미디든 — 뇌를 쉬지 않고 뭔가를 담아야 한다는 시대인 것 같기도 하다. 차분하게 살고 싶은데, 생각만큼 잘 안 된다. 조용한 시간이 주어져도 스스로 뭔가를 하게 된다. 짬짬이 시간에 브런치 댓글을 달고, 좋아요를 누르고, 그것마저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러셀은 이렇게 썼다. "지나치게 자극으로 가득 찬 삶은 소모적인 삶이며, 이러한 삶에 쾌락의 본질적 부분인 흥분을 주기 위해서는 보다 강렬한 자극이 계속 필요하게 된다"(1부, '권태와 자극'). 딱 지금의 나다. 아이들을 보면 더 느낀다. 권태를 좀 느껴야 창의성도 생기고, 뭔가에 집중할 힘도 생기는 것 같은데, 오히려 권태를 못 느끼니까 어른이든 아이든 더 산만해지는 것 같다.
그리고 피로. 나는 고2, 중3 아이를 키우고 있다. 몸을 때워서 할 수 있는 일이면 차라리 낫겠는데, 아이와의 마찰은 정신적인 피로로 쌓인다. 내가 원하는 방향과 아이의 태도가 부딪힐 때, 해결이라는 게 없다. 도돌이표처럼 같은 자리를 맴돈다. 해결책은 떠나는 것인데, 떠날 수가 없다.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과 수다를 떨거나, 책을 보거나, 글을 쓰는 것으로 버티고 있다. 정신적으로 피로한 것은 해결 방법이 없다 — 이건 내가 이 모임에서 가장 솔직하게 한 말이다.
러셀도 이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오늘날처럼 발달된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피로는 신경의 피로이다"(1부, '피로'). 육체적 피로는 잠으로 풀리지만, 정서적 피로는 쉰다고 풀리지 않는다. 정확히 그렇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 자신에게 가장 솔직해진 부분은 죄의식이었다. 나는 부지런해야 한다는 감각이 삶 전반에 깔려 있다. 어머니가 늘 부지런한 분이었기 때문이다. 또 어머니가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참고 견디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그래서인지 나도 감정 표출을 잘 안 했고, 아이들의 감정을 먼저 보듬어주기보다 문제 해결부터 하려 했다. 지금 그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쉽게 변할 것 같지 않다. 노력은 하는데, 습관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열의. 나는 2년 정도 글쓰기에 미쳐 있었다. 잠을 줄여가며 썼다. 그때는 정말 즐거웠다. 그런데 요즘은 "써서 뭐 하나"라는 생각이 도돌이표처럼 맴돈다. 독서모임을 다니고, 작가님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오면 좀 나아지긴 한다. 러셀이 말한 "진정한 열의"는 "내 본성에서 끌어와서 하게 되는 것"(2부, '열의')이라고 했는데, 그때의 나는 분명 진짜 열의에 빠져 있었다. 지금은 잠시 쉬어가는 중인 것 같다.
이 책에서 내게 가장 울림이 컸던 건, 마지막 질문이었다. 러셀은 "시선을 외부로 돌려라"고 했고,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다. 나는 러셀 쪽에 더 공감한다. 다만, 둘이 따로 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라 믹스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외부에서 얻은 것을 다시 자기 검토에 쓰고, 또 외부를 돌아보면서 자기를 다듬어가는 수준이면 좋겠다.
요즘 나는 글과 책을 통해 전에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각장애인의 삶, 상실을 겪은 사람들의 세계. 일상적인 단어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삶을 위태롭게 만드는 스크래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러셀은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이 자아라는 감옥으로부터 벗어난 사람의 표지이다"(2부, '사랑')라고 했다. 나는 아직 감옥을 다 빠져나오지 못했지만, 적어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지키며 사는 것 — 그것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사랑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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