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서툰 시절이 있다
마음의온도

절망없는 사랑이 어디 있나 - 비로소 서로에게 닿는 순간
에세이이유림
2007년 춘절.
귀향길 기차에서 우연히 만나 친구가 된 ‘린젠칭’(정백연)과 ‘팡샤오샤오’(주동우).
폭설 속에 기차는 멈추게 되고, 기다림보다 도전이 습성인 젊은 이들은 기차에서 내려 허벅지까지 빠지는 눈 속을 걸어서 고향으로 향한다.
사랑스러운 청춘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된다.
동료에서 친구로, 의리는 사랑으로. 베이징에서 함께 꿈을 나누며 연인으로 발전하는 두 사람.
막 세상을 알기 시작해서 종종거리며 두리번거리는 병아리처럼,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마주 보던 두 사람은 현실의 장벽 앞에서 결국 가슴 아픈 이별을 하게 된다.
10년이 흐른 후, 두 사람은 베이징행 비행기에서 운명처럼 재회를 한다.
폭설에 기차가 멈췄던 그날처럼, 폭설로 비행기가 결항되고. 운명처럼 두 사람은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꺼내놓게 된다.
.
.
.
이쯤 되면 어? 이거?
눈치 빠른 분들이라면 벌써, 이거 그거잖아. 했을 것이다.
맞다. 이 영화는 정백연, 주동우 주연의 <먼 훗날 우리> 내용이다.
그리고 올해 초 우리나라 버전으로 리메이크되어 구교환, 문가영 신드롬을 앓게 한 <만약에 우리> 내용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영화 <먼 훗날 우리>와 여자 주인공인 '주동우'의 광팬이기에 이 영화는 세 번을 봤다.
그렇기에 당연 <만약에 우리>는 개봉하고 바로 극장에서 한 번, OTT로 넘어온 기념으로 두 번을 봤다.
<먼 훗날 우리>의 초반 두 사람의 마음이 하트라는 모양새를 만들어갈 즈음, 게임 제작이 꿈인 남자친구의 시나리오를 보던 여자가 마알간 표정으로 이야기를 한다.
"왜 이렇게 줄거리가 평탄해? 처음부터 끝까지 행복하기만 하잖아."
"불행하면 우여곡절이 생기지."
"우리는 우여곡절이 없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우여곡절 없는 사랑이 어디 있나.
.
.
.
실로 오랜만에 '사랑' 이야기를 읽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최근 내가 읽고 있는 책들에는 이런 사랑이 출연하지 않고 있었다.
소설인데 가족이 총출동하고 있고, 남녀가 등장하는데 침대에서 발가락이 꼬이는 BGM이 흐르지 않는 글들을 읽고 있었다.
볼이 발그레하게 부끄러워하는 듯한 몽환적인 표지의 책은 오랜만이었다.
왜 나는 아니었냐고.
그러면서, 왜 나를 곁에 계속 두었냐고.
나에게 너는, 내가 누군가에게 속수무책으로 빠져들면 어떤 모습이 되는지 알게 했다.
네게는 사랑이라는 말도 버거워 그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어 숨이 찼다.
<절망없는 사랑이 어디 있나> 6p
어머나. 시작부터 직진이다.
준비운동이라던가, 노크라던가, 이런 안내 없이 바로 들이댄다.
이 책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어떤 모양으로, 어떻게 바뀌고, 어떻게 굴러가는지 여정을 담고 있다.
'너'라는 사람에게 빠져들고
'선배'라는 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라는 사람을 만난다.
하지만 그 감정이 세모인지 네모인지, 몇 번의 탈피를 거치는지, 그 시간은 어느 속도로 왔는지. 알 수가 없다.
사랑은 이렇게 시작된다.
나에게 바라는 게 없다는 건 슬픈 일이었다.
나를 받아줬다는 게 너의 마음을 나에게 내어준다는 말은 아니었는데, 나는 착각을 했다.
네 곁에 있을 수 있는 것만으로 태어나 처음 봄을 본 강아지처럼 행복해했을 뿐이었다.
<절망없는 사랑이 어디 있나> 19p
불행하게도 이 사랑은 마주 보고 있지 않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꽃이 되고 싶었다
<절망없는 사랑이 어디 있나> 28p
이분법처럼 구분된 연락처 목록 속에서 너의 이름을 찾았다.
너는 너였기에 다른 이들처럼 어떤 범주에 넣을 필요가 없었다. 그런 너에게, 이 불쌍한 나를 한 번만 봐 달라고 애원할 셈이었다.
<절망없는 사랑이 어디 있나> 41p
책의 1/3 정도 지점에서 여주인공의 마음이 빙의되었다.
급한 성격에 내가 책 안으로 뛰어들어가 '너'의 멱살(^^)을 잡고 묻고 싶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마주 앉아 있는 나는 너라는 애매한 날씨 속에 갇힌 것만 같았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그 틈에 내 마음을 얼마나 더 쏟아부어야 메울 수 있을까.
언제쯤이면 메워진 그 자리를 밟고 온전히 너를 안아볼 수 있을까.
이렇게 너와 마주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너를 잡을 수조차 없는 주제에.
<절망없는 사랑이 어디 있나> 99p
'너'에서 '선배'로, 다시 '그'로 이어지는 그녀의 사랑이 어디로 흘러갈지는 여기까지만 이야기하겠다.
300쪽의 책에서 내가 안내할 곳은 딱 여기, 3분의 1에서 멈추겠다.
이렇게 잔인하게 시작된 사랑이 어디에 닿는지는, 직접 이 사랑의 여정을 따라가 보시기를.
이 책은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부침개 놀이를 하며 뒤적뒤적 읽기가 힘든 책이다.
한 손에는 연필, 한 손에는 인덱스, 누군가 옆에서 "다음" 하면 페이지를 넘겨주었으면 하는 책이다.
밑줄 그을 문장이 그득하다는 얘기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
언제나처럼 봄이 찾아왔다.
오래전부터 약속이라도 한 듯 망설임 없이, 햇살은 조금 더 따뜻해졌고 바람은 덜 매서워졌다.
얼었던 땅도 서서히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단 한 번도 늦은 적 없는 계절.
어쩌면 봄은 모든 계절 중 가장 성실한 계절이었다.
<절망없는 사랑이 어디 있나> 134p
영화 <먼 훗날 우리>는
2007년 만남- 2008년 이해- 2010년 사랑- 2011년 다툼- 2012년 오해- 2013년 상처- 2014년 추억- 2016년 연민- 2017년 재회의 시간을 담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마지막 질문을 남긴다.
그때 내가 안 떠났다면,
그 이후에 우리는 달라졌을까?
젊어서 서툴렀고, 몰라서 서툴렀던 시절.
서투름이 아름다웠던 시절을 다시 되돌아보았다.
영화 <먼 훗날 우리>와 <만약에 우리>에는 독특한 공통점이 있다.
과거는 컬러이고, 현재는 흑백이다.
지나간 시간이 오히려 더 선명하게 남아 있다는 듯이.
책을 덮고,
여자 주인공에게는 그 반대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온 사랑이 어떤 색으로 남았든, 지금의 시간이 가장 선명한 컬러이기를.
기왕이면, 쨍한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갯빛으로 찬란하기를.
절망없는 사랑이 어디 있나.
서툴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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