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도착하지 않은 편지
아호파파

복자에게
소설/시/희곡김금희
당신은 아직 누군가에게 전하지 못한 말이 있는가?
끝내 전하지 못한 말은 용기가 모자랐을 수도, 때가 어긋났을 수도 있다. 그리고 어쩌면 그 말은 아직 도착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8년 전, 일본 메이지무라의 느린 우체통에 편지 한 통을 넣었다. 부치면 10년 뒤에야 배달되는 특별한 우체통이었다.
당시 나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연애를 하고 있었는데 서로 다른 나라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어서 만날 수 있는 날은 1년에 고작 서너 번뿐이었다.
만남의 시작과 끝은 언제나 공항이었고 함께 하는 시간은 언제나 꿈처럼 지나가고 출국장 앞에 서서 헤어질 때마다 그녀는 눈물을 보였다.
만나러 가는 비행기 안에서는 곧 만난다는 설레임이 가득했지만,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는 방금 헤어진 그녀를 떠올리며 창밖만 바라봤다.
나는 그 눈물 앞에서 아무런 약속도 해줄 수 없었다.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넘기 어려웠던 국제결혼이라는 현실은 우리가 끝내 이루어질 수 있을까 하는 불안과 그녀가 원하던 것들을 채워줄 수 없었던 부족함에 미안한 마음이 항상 가득했다.
그때 그 시절 나는 차마 입으로 건네지 못했던 말들을 편지에 담아, 10년 후 그녀에게 부쳤다.
'하루카에게…'
나의 편지도 이 책의 제목처럼 누군가의 이름으로 시작했다.
이 소설은 하나의 느린 우체통처럼 다가왔다.
작가는 같은 인물과 같은 공간을 서로 다른 시간대에 배치하고, 그 사이의 공백을 편지로 잇고 있었다.
어린 시절 끝내 전하지 못한 말이 몇십 년이라는 시간을 건너 전해지는 일을, 열세 살의 이영초롱과 30대의 영초롱을 통해 보여주었다.
영초롱을 돌봐주던 고모가 교도소에 있는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도 마찬가지다.
발신인과 수신인은 다르지만, 그 편지 역시 과거와 현재를 이으며 전하지 못한 마음이 시간을 건너가는 모습을 담고 있다.
누구나 전하지 못한 말을 품은 채 살아간다는 이야기를, 작가는 이렇게 여러 인물의 편지로 겹쳐 들려주고 있었다.
책장을 넘기는 내내 나는 자꾸 8년 전의 우체통 앞으로 돌아갔다. 영초롱이 부치지 못한 편지를 쓰는 장면마다, 내가 편지에 눌러 담았던 문장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10년 후 그날에는 반드시 네 곁에 있겠다는 약속. 다시는 공항에서 우는 일이 없게 하겠다는 다짐. 그 시절 나는 그 말들을 그녀 앞에서 꺼낼 수 없었다. 지킬 수 없을지도 모르는 약속을 입 밖에 내어 그 말들이 오히려 우리를 더 아프게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말들을 10년 뒤로 보냈다.
이 소설을 읽는 일은 그렇게 내가 보낸 편지의 행방을 따라가는 일이기도 했다.
열세 살 영초롱은 부모님의 사업이 무너지면서 남동생은 큰집으로, 자신은 제주도 작은 섬 고고리의 보건소 의사인 고모에게 맡겨졌다.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뿐이던 아이에게 처음 말을 걸어온 것은 복자였다. 섬에 들어와 할망신에게 인사를 하지 않아 너가 발목을 다쳤다며 복자는 다짜고짜 영초롱을 할망당으로 데려간다. 얼떨결에 신 앞에 선 영초롱은 그곳에서 처음으로 자기 집이 망했다는 사실을 소리 내어 말한다.
빚쟁이들이 신발을 신은 채 집에 들이닥치던 그날의 기억과, 동생의 생일 케이크를 사줄 수 없었던 여름의 일들을 쏟아낸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입을 열자 마음이 편안해진다. 복자는 할망신이 뭐든 다 들어주는 신이라고 했다. 그래서 어른들이 때마다 제를 지내는 것이라고. 그 말을 믿고 싶었던 것일까, 영초롱은 그날 할망신에게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빈다. 열세 살의 영초롱은 이렇게 이 섬에서 전해지는 말의 힘을 알아가며 함께 사는법 배운다.
섬은 슬픔을 말로 기억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고모는 어린 영초롱에게, 제주에는 가엾게 죽은 아기를 가리키는 말과 서럽고 불쌍한 어미를 가리키는 말이 따로 있다고 슬픔이 반복되면 그렇게 말로 남는 것이라고 알려준다.
그 말들 뒤에는 제주 4·3 사건의 기억도 있었다. 경찰이 섬으로 건너온다는 소문이 돌자, 마을 사람들은 올라가면 태풍이 온다고 전해지던 고냉이돌에 일부러 올라갔다고 한다. 신을 노하게 해 폭풍우를 부르면 경찰이 바다를 건너지 못하리라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날 폭풍우는 불지 않았고, 많은 사람이 죽었다. 말하고 빌면 이루어진다고 믿었던 사람들의 소원은, 절박했던 순간에 응답받지 못했다.
그래도 사람들은 말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응답받지 못한 소원은 사라지는 대신, 슬픔을 부르는 이름이 되어 섬에 남아 있었고, 소설 곳곳에서 다른 모습으로 다시 나타난다.
이 소설에서 말은 사람과 사람 사이만이 아니라, 시간과 시간 사이를 오가며 전해지고 있는데 소설의 인물들이 품고 있는 상처도 폭력이나 배신 같은 것이 아니라, 어쩌면 단 한마디의 말이었다.
전하고 싶은 말이 마음만으로 온전히 전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은 상대를 위로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고 심지어 진실을 말하는 일조차, 상황에 따라 누군가를 무너뜨리는 무기가 되기도 한다고 사건을 통해 보여준다.
고모는 젊은 날 법정에서 한 자신의 증언이 친구의 유죄 판결에 쓰이는 일을 겪고, 그 죄책감으로 스스로를 섬에 유배 보내듯 내려와 살고 있었다. 영초롱은 배관 기술자 인공이 이선 고모의 휴게점에 자주 드나든다는 사실을 절대 말하지 말라는 복자의 부탁을 받고도, 어른들의 질문에 자기가 본 대로 말해버린다. 그 한마디로 이선 고모는 마을 사람들의 냉담한 시선과 모멸을 감당해야 했고, 복자는 "다시는 나한테 말 걸지 마"라는 말로 절교를 선언하게 된다. 그리고 복수로 고모의 편지를 몰래 읽어온 영초롱의 비밀을 고모에게 일러바쳤다고 털어놓는다.
말이 이렇게 위험한 것이라면, 전하지 못한 말에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는 셈이다. 그래서 이 소설에는 상대방에게 도착하지 못한 편지들이 곳곳에 쌓여 있다.
고모는 감옥에 있는 친구에게 전동 타자기로 길고 긴 편지를 쓰면서, 안녕하냐는 인사를 맨 끝에 가서야 겨우 쓴다. 보통의 편지가 첫머리에 두는 그 인사를 끝까지 미룬다는 것은, 그 안부조차 묻기 미안한 마음을 오래 품고 살았다는 뜻일 것이다. 가장 하기 힘든 인사가 안녕이라는 고모의 말이 애처롭지만 공감되게 다가왔다.
영초롱은 절교당한 뒤 고모의 타자기 앞에 앉아 '복자에게...'로 시작하는 편지를 쓴다. 고개를 숙이면 눈물이 나기 때문에 손글씨 대신 허리를 곧게 세우고 칠 수 있는 타자기를 택했다는 대목에서, 편지를 쓰는 어린 영초롱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 편지들은 끝내 부쳐지지 않고 모두 버려지지만, 그 안의 마음만은 선명하게 남는다.
도착하지 못한 편지는 또 있다. 동창 고오세는 서울로 떠난 영초롱에게 열 통의 편지를 보내고도 답장을 받지 못하자, 생선 가게 심부름으로 모은 돈으로 비행기 표를 사서 무작정 서울로 찾아간다. 그러나 영초롱이 알려준 주소는 이미 경매로 넘어간 옛집이었고, 소년의 편지는 그 집에 새로 살고 있는 낯선 청년의 손에서 뜯겨 있었다. 받는 사람에게 닿지 못한 말이 엉뚱한 사람의 연애편지에 인용되고 있었다는 웃지 못할 사연 앞에서, 소년은 제 마음이 다 발라먹고 버려진 닭뼈가 된 것 같았다고 회상한다.
쓰고도 부치지 못한 편지, 부치고도 도착하지 못한 편지. 나의 편지도 8년 전 부쳐졌지만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전하지 못한 말은 이렇게 다양한 이유로 세상에 남아 존재한다.
그리고 소설은 전하지 못한 말들을 통해 우리에게 다시 묻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그 말을 전하려하는가?
이 질 전하지 못한 편지에 담긴 것은 그건 바로 '너를 위하는 마음'일것이다.
아마 같은 감정들이었을 것이다.
고모는 섬을 떠나는 영초롱에게, 미안함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감정이니 그것만은 간직하고 살라고 당부한다. 내 편지의 바닥에 깔려 있던 것도 미안함이었다. 사랑한다는 말로는 해결되지 않는, 지금 당장 네 곁에 있어 주지 못한다는 미안함. 그녀가 바란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좋아하는 사람과 같은 계절, 같은 시간 속에서 지내는 것. 그 단순한 바람 하나를 나는 몇 년째 들어주지 못하고 있었다. 당장 마주 보고 말할 용기가 없는 사람은 시간에 기대게 된다. 지금은 못 하는 말도 10년쯤 지나면 웃으며 꺼낼 수 있게 되기를, 아니 그때쯤에는 이 말이 더 이상 필요 없는 사이가 되어 있기를 바라면서. 그러니 느린 우체통에 편지를 넣는 마음과, 부치지 못할 편지를 타자기로 치는 열세 살 영초롱의 마음은 결국 같은 곳에 있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10년 뒤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상상하며 그녀에게 쓴 편지를 들고, 나는 우체통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10년이 흘러도 우리가 함께일지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10년을 기다려서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정말 이것이었을지 스스로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느린 우체통은 내게 되묻고 있었다. 이 말을 10년 동안 품고 살 각오가 있느냐고.
판사가 된 30대 영초롱은 법정에서 욕설을 해 징계를 받고 좌천성 발령을 받아 다시 제주를 찾게 된다.
그리고 복자를 다시 만난다. 먼저 안부를 건넨 것은 복자였다. 초등학교 기념식 날, 복자는 동창 편에 말린 미역을 들려 보내는 것으로 20년 만의 인사를 대신한다. 원망의 말 대신 건네진 그 무심한 선물이 두 사람 사이에 다시 말문을 연다. 간호사가 된 복자는 병원에서 일하다 산업재해 소송의 당사자가 되어 있었고, 영초롱은 판사라는 자리 때문에 오히려 아무 도움도 될 수 없는 자신에게 실망한다. 재판에서 물러나 달라는 복자의 부탁은 서운했고, 두 사람은 어른이 되어서도 또 한 번 어긋난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열세 살의 영초롱은 편지를 쓰고 폐기했지만, 어른이 된 영초롱은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러 마침내 복자에게 보내는 편지를 쓴다. 이십 년 만에 겨우 부쳐지는 그 편지가 이 소설의 제목이 되었다. 판결로는 줄 수 없었던 말, 법의 언어로는 끝내 번역되지 않는 마음이 거기 담긴다.
복자의 싸움을 따라가다 보면, 전하지 못한 말이 개인들 사이에만 쌓이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병원에서 일하다 아이를 잃은 간호사들이 자신들의 아픔을 산업재해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하는 이 소송은, 실제 제주에서 있었던 간호사들의 오랜 싸움을 떠올리게 한다. 그들의 고통은 오랫동안 개인의 불운으로 치부되었고, 제도의 언어가 되어 수신되기까지 너무 긴 시간이 걸렸다. 그러고 보면 사회에도 느린 우체통이 있다. 4·3의 슬픔이 설운 말들로만 남아 수십 년을 떠돌다 겨우 역사에 수신된 것처럼, 노동자의 고통이 판결문 한 장에 도착하기까지 한 세대가 걸리는 것처럼. 다만 나의 느린 편지가 스스로 선택한 기다림이었다면, 이들의 기다림은 사회가 수신을 미룬 시간이었다. 영초롱의 법정에는 한글학교를 갓 졸업한 청소 노동자가 판사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 와 읽는 장면이 나온다. 평생 글을 몰랐던 사람이 글을 배워 처음 쓴 것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편지였다는 사실은, 편지가 개인의 그리움만이 아니라 사회를 향한 간절한 발신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금희가 복자의 이야기로 묻는 것도 결국 이것일 테다. 우리 사회는 지금, 누군가 오래 품어온 말을 제때 수신하고 있는가.
나의 편지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배달을 기다리고 있다. 2년 뒤면 도착한다. 그런데 편지를 부치던 날에는 몰랐던 일이 하나 있다. 그때 봉투에 적었던 그 주소가, 지금은 내가 그녀와 함께 사는 우리집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편지 속 하루카와 결혼했고, 그리고 새로운 가족, 아이 셋과 함께 살고 있다. 예전에는 며칠을 쪼개어 아껴 써야 했던 시간이 이제는 아무렇지 않은 일상이 되었다. 함께 저녁을 먹고, 계절이 바뀌는 것을 같은 창으로 내다보는 일. 8년 전의 우리가 그토록 갖고 싶어 했던 것은 결국 이런 평범한 날들이었다. 공항에서 헤어질 일이 없어졌으니 헤어질 때의 눈물도 사라졌다. 편지에 적은 못다한 말들은 이미 편지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다.
2년 뒤 편지가 도착하는 날, 우리는 8년 전 그때 마음을 함께 읽게 될 것이다. 국제결혼이라는 벽 앞에서 떨던 청년의 문장을, 그 벽을 이미 함께 넘은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읽는 풍경. 그날의 편지는 더 이상 미래를 향한 약속이 아니라 과거에서 온 안부일 것이다. 잘 지냈느냐고, 그때의 말들을 지키며 살았느냐고. 다행히 나는 그 물음 앞에서 부끄럽지 않을 자신이 있다. 그때의 마음과 지금의 마음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함께 사는 하루하루가 증명해 주고 있으니까. 김금희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삶이 계속되는 한 실패도 계속되겠지만 그것이 삶 전체의 실패가 되게 하지는 말자고 썼다. 영초롱의 편지도, 고모의 안녕도, 열세 살 소년 고오세의 답장 없던 편지도, 그리고 나의 느린 편지도 결국 같은 것을 말하고 있었다.
지금 전하지 못한 말은 늦게라도 당신의 진심과 함께 전해져도 된다.
말은 제때 전하는 것이 아니라, 지킬 수 있을 때까지 품는 것이라고. 오래 품은 말은 사라지지 않고, 언젠가 반드시 도착한다고.
당신에게도 아직 누군가에게 전하지 못한 말이 있다면, 그 말은 지금 어디쯤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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