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기원 — 사월이의 서평
사월이

행복의 기원
인문학서은국
솔직히 이 책을 펴기 전, 지난달에 읽었던 러셀의 《행복의 정복》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그 책에서는 행복이 굉장히 자기 수련을 해야 하고 열심히 노력해야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행복의 기원》은 술술 잘 읽히면서도 마음을 많이 내려놓게 해주었다.
행복에 유전적인 게 있다고 하니까 — 지금 별로 안 행복한 게 내 탓만은 아니구나, 그런 마음이 들었다.
나는 생각이 되게 많은 편이다.
그래서 책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조언이 공허하다고 지적하는 대목에 공감했다.
불안하거나 우울할 때 "왜 그렇게 못하니, 긍정적으로 생각해"라고 한다고 해서 의지로 되는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행복은 본질적으로 생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생각을 고치라고 조언하고 있다"(1장)라고 썼는데, 전반적으로 저자가 좀 시니컬한 분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본인에게 그 문제가 있어서 이 연구를 시작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긍정적 사고라는 것이 어떤 사건을 사후적으로 내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관점의 선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보상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했다.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 있잖아.
나는 그런 일을 해내고 나면 스스로에게 주는 보상으로 맛있는 걸 먹거나, 근사한 브런치를 먹는다.
책에서 말하는 쾌감의 역할이 "쾌감을 추구하라"가 아니라 힘든 것도 참을 수 있게 해주는 윤활유 같은 것이라고 나는 이해했다.
반대로 누군가를 만났을 때 가치관이 충돌하는 쎄한 느낌이 올 때가 있다.
그럴 때 참고 가다 보면 결국 끝이 좋지 않더라.
그래서 그런 불쾌의 직관이 올 때 살짝 거리를 두는 것도 나를 보호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핵심 결론 중 하나인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5장)라는 말에도 공감한다.
다만 전제가 있다.
전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극심하게 받을 때는 계절이 오고 가는 것도, 누군가의 선물도 기쁘게 느끼질 못했다.
소소한 기쁨을 느끼려면 절대적으로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벗어나 있어야 하는 게 전제가 아닌가.
요즘 세종에 내려와 쉬면서 들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걸 보고, 하늘이 잘 보이는 개방감을 느끼면서 죽어 있던 감각들이 살아나고 있다.
뽀송하게 건조기에 돌린 수건, 여름밤 에어컨의 쾌적함,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걸 먹는 것.
이런 것들이 나한테는 소소한 행복이다.
저자가 쓴 대로 "쥐의 뇌에서도 쾌감 센터가 발견됐다"(4장)는 걸 보면, 쥐랑 나랑 다를 게 없으니 이렇게 작은 것들로 행복해질 수 있다면 그것도 충분히 나쁘지 않다.
관계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편이다.
연결되어 있을 때 행복감을 느끼고 공감하면서 나눌 수 있는 관계가 중요하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관계의 개수보다 질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된다.
피곤하게 하는 관계를 정리하고 정말 내 삶을 나눌 수 있는 사람과의 관계가 행복의 조건이지 않을까.
어제 고등학교 때 친구가 세종까지 나를 보러 와서 맛있는 것을 먹고 근처를 여행한 시간이 정말 행복했다.
결국 지나고 나면 누구랑 같이 웃었고, 즐거웠고, 행복했던 기억만 남는 것 같다.
다만 저자가 "외향적인 사람이 더 행복하다"는 연구 결과를 강조하는 부분에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나는 외향적인 사람이지만, 외향성과 관계를 잘 맺는 능력은 별개라고 본다.
내향적이어도 조용히 스며들면서 모든 사람과 대화를 잘하고 관계를 잘 맺는 분들이 있다.
그런 분들은 외향적인 나보다 오히려 관계의 질이 더 좋을 수도 있다.
그래서 외향성이 행복의 절대적 조건이라는 결론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또 하나.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가치를 다소 폄하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은 한 철학자가 가졌던 개인적인 견해일 뿐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 아님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3장)라고 했는데, 나는 거기에 동의하지 못한다.
이 책이 연구 데이터를 기반으로 보편적인 행복에 대해 이야기한 것은 인정하지만, 행복의 스펙트럼은 훨씬 넓다.
자아실현이나 성찰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행복도 분명히 있다.
체면이나 가면을 벗어던지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내 욕구에 충실하게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가치를 추구하면서 오는 행복을 무시할 수는 없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여전히 마음에 남는 것은 유전이라는 단어다.
기본적으로 행복한 사람이 부럽기도 하다.
나는 좀 그렇지는 않으니까.
그런데 이 책에서 유전이라고 하니까, 내 잘못은 아니다 — 그렇게 생각해보려고 한다.
인생에 정해진 틀은 없고, 그 코스를 벗어난 삶도 충분히 괜찮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다만, 아직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칭찬해주면 기분 좋고, 더 잘하고 싶어지고, 그걸 내려놔야 하는 건 알지만 아직 잔재가 남아 있다.
의식적으로 "이거 못한다고 죽는 거 아니잖아" 하는 마음을 가질 노력을 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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