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복 - 서평 no.1
아호파파

행복의 정복
인문학버트런드 러셀
★★★★★수학자이자 철학자, 작가였던 20세기 최고의 지성, 버트런드 러셀.
그가 말하는 행복이란 무엇일까?
이 책은 그의 불행했던 청년 시절을 돌아보며, 그가 가졌던 행복에 대한 깊은 고찰이 담겨져 있다.
옮긴 이는 러셀의 책을 이렇게 소개한다.
"행복은 오직 쟁취하는 것이다. (…) 이론이나 염원이 문제가 아니라 행복을 착실히 정복해나가는 것이 문제다."
- <행복의 정복>, 옮긴이의 말 중에서...
러셀에게 '행복은 우연히 찾아오는 선물이 아니라, 의식적인 노력으로 한 걸음씩 쌓아 올려 정복해 나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행복을 더 깊게 사유하기 위해 불행의 원인과 행복의 원인으로 나누어서 다루는데, 1부에서 불행의 원인을 해부하며 원인으로 자기몰입, 경쟁, 권태, 피로, 질투, 죄의식, 피해망상, 여론에 대한 공포를 꼽았다.
놀라웠던 점은 1930년에 쓰인 진단이 지금 현 시대 우리가 보이는 불행의 모습과 거의 정확히 겹친다는 점이었다.
이 중 권태에 대한 분석이 특히 날카롭다.
러셀은 권태의 반대가 쾌락이 아니라 '자극'이라고 짚는다.
현대인은 지루함을 피하려 끊임없이 자극을 찾지만, 자극은 마약과 같아서 점점 더 강한 것을 요구하고, 결국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에 이른다고 말한다.
오늘날 SNS, 게임, 각종 콘텐츠, 숏츠에 길들여진 우리에게 100년 전 전한 그의 경고는 더 절실하게 와닿는다.
러셀은 책에서 권태와 행복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단언한다.
"권태를 견디는 어느 정도의 힘은 행복한 생활에 필수적이며, 따라서 젊은이들에게 반드시 가르쳐주어야 할 사항 가운데 하나이다. (...) 행복한 삶은 대부분 조용한 생활이어야 한다. 참된 환희는 오직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 <행복의 정복>, 4장 권태와 자극 중에서...
질투에 대한 진단도 주목할 만하다.
러셀은 비교하는 습관에 대해서도 아래와 같이 경고한다.
"비교하는 습관은 치명적인 것이다. 즐거운 일이 생겼을 때에는 그 일을 충분히 즐겨야지, 다른 사람에게 생겼을지도 모를 일에 비하면 즐거운 것이 못 된다고 생각하며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
- <행복의 정복>, 6장 질투 중에서...
나폴레옹은 카이사르를, 카이사르는 알렉산더를, 알렉산더는 헤라클레스를 부러워했을 거라는 비유는 비교의 사슬이 끝이 없음을 보여줌에 동시에 인간의 비교 의식이란 근본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SNS 피드를 스크롤하며 남의 삶과 자기 삶을 끊임없이 저울질하는 2026년을 사는 우리에게, 1930년의 통찰은 거의 예언처럼 느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1부 불행의 원인에 대해 전체적으로 불행의 공통 뿌리로 '자기 안에 갇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고통, 자신의 부족함, 자신에 대한 타인의 시선에만 주의를 고정시킬 때 불행은 깊어진다고 그는 진단하였다.
2부 행복의 원인에서 러셀은 방향을 전환하여 행복의 원천으로 열의, 사랑, 일, 비개인적 관심, 노력과 체념을 꼽으며 차례대로 다룬다.
이 중에서 러셀이 가장 먼저 힘주어 말하는 것은 '열의(zest)'이다.
"우연한 대상으로부터 (...) 풍부한 흥미를 찾아내는 사람에게 인생은 결코 지루하지 않을 것이다"
- <행복의 정복>, 11장 '열의' 중에서
열의란 세상을 향해 호기심의 촉수를 뻗는 태도다.
더불어 행복한 사람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을 '열의'라고 말한다.
러셀은 열의가 단순한 성격 특성이 아니라 기를 수 있는 능력이자 습관 중 하나라고 보았다.
그리고 흥미로운 주장도 하는데, 열의를 가로막는 것은 '사랑'이고 촉진 시키는 것도 '사랑'이라고 말한다.
"열의를 잃게 만드는 주요한 원인 중 하나는 사랑받지 못한다는 감정이며, 반대로 사랑받고 있다는 감정은 무엇보다도 열의를 촉진시킨다"
- <행복의 정복>, 12장 '사랑' 중에서...
러셀은 사랑을 열의의 토양으로 놓는다. 사랑받고 있다는 안정감이 있어야 세상을 향해 눈을 돌릴 여유가 생긴다는 것이다.
동시에 그는 사랑을 '주는' 행위에도 두 종류가 있음을 구분한다.
안정감에서 우러나오는 사랑과 불안에서 비롯되는 집착.
전자만이 진정한 열의의 표현이라고 말하며, 참된 사랑의 모습으로 보았다.
인생에 대한 일반적인 자신감은 무엇보다도 인간이 필요로 하는 올바른 종류의 사랑을 언제나 받고 있다는 데에서 생긴다.
- <행복의 정복>, 12장 '사랑' 중에서...
일에 대한 러셀의 시각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일은 권태를 막고, 야심의 표출을 마련하며, 삶에 일관된 목적을 부여함으로써 행복의 빼놓을 수 없는 조건이 된다고 말한다.
시종일관한 목적만으로 행복한 삶이 이룩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행복한 삶의 거의 빼놓을 수 없는 조건이다. 그리고 시종일관한 목적은 주로 일에서 구체화되는 것이다.
- <행복의 정복>, 14장 '일' 중에서...
더불어, 일이 행복을 보장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가장 훌륭한 일이 인간을 반드시 행복하게 만든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 다만 가장 훌륭한 일은 인간을 덜 불행하게 만든다고 주장할 수 있을 뿐이다"
- <행복의 정복>, 14장 '일' 중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행복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할 일이 없는 사람이 가장 지루하고 불행하다,라고 말한다
일은 최소한 시간을 채워주고, 잘하면 "내가 무언가를 해냈다"는 보람을 준다.
러셀은 일이 주는 즐거움을 두 단계로 나눈다.
하나는 실력을 갈고닦아 발휘하는 재미이고, 다른 하나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기쁨이다.
이를 러셀은 '건설'이라고 지칭하는데, 건설은 무질서에서 목적을 구체화하는 것이고, 건설의 만족은 한 성공에서 다음 성공으로 무한히 이어지므로 더 크고 깊은 행복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러셀의 책 <행복의 정복>에서 다루는 모든 논의에서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것은 결국 한가지로 수렴하는데,
'자기 안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넘어 세계와의 폭 넓은 관심과 적극적인 관계(열의)를 가지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행복한 사람은 객관적으로 사는 사람이자 자유로운 사랑과 폭넓은 관심을 가진 사람이며 이러한 사랑과 관심을 통해 (...) 자신의 행복을 확보하는 사람이다"
- <행복의 정복>, 17장 '행복한 사람' 중에서...
이 책에서 제시하는 러셀의 처방은 명료하고 실천적이다.
그러나 한계도 분명하다.
이 책에서는 구조적 불평등, 빈곤, 전쟁, 기근처럼 개인의 태도 전환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불행에 대해서도 인정한다.
그의 조언이 일정한 물질적·사회적 안정을 전제하고 있음을 책 서두에서도 분명히 밝힌다.
또한 러셀의 낙관적 합리주의가 감정의 복잡성을 다소 단순화한다는 느낌도 있다.
불행의 원인을 명확히 진단하고 의지로 교정하라는 접근이 해결책으로 자주 등장하는데, 현대 정신의학에서 트라우마나 정신건강의 문제 앞에서는 이러한 주장은 힘을 잃을 수 있다.
"'안다는 것'만으로 진리와 진실에 대한 인간의 의무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 내 생활 속에 어떻게 구현시키는가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다"라고 말하는 옮긴이의 말과 같이,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 사이의 간극은 러셀이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는 것은 우리도 받아드려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거의 한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읽히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
러셀은 행복을 신비화하지 않는다.
행복을 잘게 쪼개어 관찰 가능한 습관과 태도의 문제로 환원하고, 누구든 시작할 수 있는 구체적 방향을 제시하였다.
자기계발서의 과장도, 철학서의 난해함도 없이 건조하고 정직한 문장으로 행복의 실제적 방법론을 전한다.
이 책을 다 읽은 후, 나도 작은 태도부터 하나씩 바꾸려 노력하고 있다.
'권태를 견디는 어느 정도의 힘은 행복한 생활에 필수적이며 젊은이들에게 반드시 가르쳐주어야 할 사항 가운데 하나'라는 이 책의 조언에 따라 의식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확보하려고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화장실에서 즐기던 짧은 숏츠, 일상 생활중 생기는 작은 짜투리 시간에 SNS를 보지 않고 그냥 권태로운 그 상황을 받아드리고 느끼는 행동의 전환으로 말이다.
과연 이런 작은 행동의 교정과 태도의 변화로 러셀의 말한 행복으로 조금씩 정복해 나갈지는 앞으로 계속 실천해 나가며 삶으로서 증명해나갈 것이다.
관련 서평

아직 도착하지 않은 편지 — 김금희, 《복자에게》를 읽고
당신은 아직 전하지 못한 말이 있는가? 말을 삼키는 데는 의지가, 말을 꺼내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한다. 끝내 전하지 못한…

사랑이 있으니 살아집디다 - 서평 no.4
1933년생 강순희는 하얼빈에서 유년을 보내고, 평안북도 박천과 평양에서 학교를 다니다 전쟁이 나자 열여덟 나이에 가족 일곱…

행복의 기원 — 희지의 서평
예전에 한 번 읽었던 책이다. 행복을 진화론적 관점으로 풀어내는 접근이 신선했고, 과학적으로 파고드는 첫머리에 호기심이 확 끌…

행복의 기원 — 백수광부의 서평
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 솔직히 신선했다. 지난번 모임에서 행복을 정복했는데, 이번에는 기원까지 파헤치겠다니. 행복 관련 책은…

행복의 기원 — IndigoB의 서평
이 책을 처음 읽은 건 십몇 년 전, 초판이 나왔을 때였다. 행복을 아리스토텔레스의 관념론에서 벗어나 다윈의 진화론으로 해석하…

다시 읽은 『행복의 기원』 — 장혜경
이 책을 처음 읽은 건 꽤 오래전이다. 그때는 나를 아직 잘 모를 때였고, 행복보다는 당장 닥친 학점과 취업에 신경을 쓰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