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것들이 녹지 않기를 — 『행복의 기원』을 읽고
권영민

행복의 기원
인문학서은국
솔직히 나는 책을 좋아하지만 의지가 부족한 사람이다.
밀리의서재에 좋아요를 눌러놓은 책만 이백 권이 넘는데, 읽은 건 십 퍼센트도 안 된다.
이 책도 처음에는 행복에 대한 또 하나의 자기계발서인 줄 알았다.
그런데 전혀 달랐다.
저자는 행복을 향해 달려가라고 말하는 대신, 행복이 왜 존재하는지를 물었다.
저자는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감을 느끼도록 설계된 것이 인간이다"(서문)라고 단언한다.
처음 이 문장을 만났을 때 아닙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좀 낫지 않냐, 그런 반론이 올라왔다.
하지만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완전히 틀렸다고 할 수도 없다.
뗄 수 없는 이야기를 억지로 분리하려는 느낌이 들면서도, 돌아보면 저자가 맞는 부분이 분명 있었다.
특히 '적응'이라는 키워드가 마음에 남았다.
저자는 "아무리 감격스러운 사건도 시간이 지나면 일상의 일부가 되어 희미해진다"(6장)고 쓴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점점 무뎌지는 것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프로그래밍이라는 거다.
나도 회사에 처음 들어갔을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월급이 꽤 올랐다.
하지만 그게 내 행복을 극적으로 바꿨느냐고 물으면 잘 모르겠다.
저자가 "지난 50년간 미국의 평균 가계소득은 약 2배로 증가했지만" 행복 수준은 "자로 그은 것처럼 그대로"(6장)라고 쓴 대목이 내 경험과 겹쳐 보였다.
그래서인지 나는 로또에 당첨되는 것이 오히려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저자도 "복권에 당첨된 자들의 행복 더듬이는 둔해진다"(6장)고 했는데 정확히 와닿았다.
소소한 행복들이 진짜 중요하고, 그 소중함을 잃지 않는 게 핵심이다.
이 책에서 또 동의한 부분은 결국 사람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저자는 "인간이 경험하는 가장 강렬한 고통과 기쁨은 모두 사람에게서 비롯된다"(5장)고 말한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건 사람을 통한 인정인 것 같다.
이 사람은 믿을 만하다, 얘한테 물어보면 해결된다, 그런 존재로 여겨지는 것.
남을 의식하는 거라는 걸 알면서도, 인정욕구가 결국 나를 움직이게 한다.
한국 사회에서 어릴 때부터 경쟁 속에 자라왔고, 회사에서도 매년 고과로 줄을 세우니까.
타인의 시선을 신경 안 쓴다고 하지만 디폴트로 깔려 있어서 쉽지 않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마음속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과 보내는 시간이다.
군대에서 함께 생활했던 동생이 같은 서울에서 일하고 있어서, 퇴근 후 같이 밥을 먹으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눈다.
십 년 넘게 알고 지낸 사이라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다.
생산적인 시간은 아닐 수 있지만, 그런 깊은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야말로 행복에 가장 가까운 일이다.
다 읽고 나서도 마음에 남는 문장이 있다.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6장).
퇴근 후 아내와 하루 이야기를 나누는 것, 오래된 친구와 밥 한 끼 먹는 것.
녹아 없어질 것 같은 작은 순간들을 자주 모으는 게 답이라면, 나는 이미 나쁘지 않은 방향으로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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