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기원 — 정규형
정규형

행복의 기원
인문학서은국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런 교양서를 즐겨 읽는 편이 아니다.
소설이나 판타지, 무협 같은 걸 훨씬 좋아한다.
그런데 좋은 기회로 독서모임에 초대받아 《행복의 기원》을 펼치게 됐다.
일본에 온 지 석 달밖에 안 된 사회 초년생이 행복을 논하는 책을 읽는다는 게 좀 어색했지만, 읽고 나서 오히려 지금의 내 상황과 맞닿는 부분이 많아 놀랐다.
이 책에서 저자는 "긍정적인 생각을 해라" 같은 조언이 공허하다고 말한다.
"불행한 사람은 긍정의 가치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1장, '행복은 생각인가').
나는 이 견해와 좀 달랐다.
행복이라는 것 자체가 추상적인 단어인데, 책에서 자꾸 호르몬 이야기를 하고 물질적인 방향으로만 끌고 가는 시도가 좀 맞지 않는다고 느꼈다.
행복은 결국 그 사람의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긍정적 사고로 결정되는 것 같다는 게 내 생각이다.
왜냐하면 나한테 실제로 그런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대학원 생활을 하고 취업이 일 년 정도 정체되던 시기가 있었다.
되게 힘들었다.
그러다 잡코리아에서 우연히 일본 포지션 제안이 왔고, 자연스럽게 건너오게 됐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게 있다.
우연찮은 기회가 왔을 때 그걸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행복이라는 것.
별거 아닌 기회로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
저자가 말하는 "환경을 바꾸는 것이 핵심"(개정판 부록, '생각을 바꾸는 것보다 환경을 바꾸는 것이 핵심 포인트다')이라는 주장과도 통하는 부분이 있겠지만, 나는 그보다 먼저 마음의 태도가 바뀌어야 기회도 보인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 예전의 나에게는 인정 욕구가 되게 컸다.
스스로 똑똑하다고 느끼고 싶었고, 그러다 보니 실제로는 똑똑하지 않은데 그 욕구를 채우려고 남을 깎아내리는 행동까지 하게 되더라.
부정적이지 않으면서 긍정적인 인정 욕구를 얻는 방법이 뭘까 고민했는데, 결국 답은 스스로에 대한 인정이었다.
어제보다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작은 성취감.
요즘 퇴근 후에 피곤해 죽겠는데도 삼십 분씩 달리기를 하고 있다.
안 하던 걸 하게 됐으니까 그것만으로도 뭔가 나아졌다는 느낌이 든다.
집에 있으면 처지니까, 나가서 뛰는 거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시작한 건데, 이게 저자가 말하는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7장, 'Happiness is the frequency, not the intensity of positive affect')라는 명제와 딱 맞아떨어진다.
큰 성취 한 번보다 매일의 작은 기쁨이 중요하다는 것.
책에서 행복의 빈도 이야기가 나왔을 때, 백억 원 복권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나는 백억은 오히려 불행이라고 생각했다.
도파민 과다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많아서.
행복에도 도파민, 옥시토신, 세로토닌 같은 여러 종류가 있는데, 백억 원은 도파민의 끝판왕 같은 것이고 그게 꼭 행복은 아니다.
차라리 십만 원짜리 연금 복권이 매일 나오는 게 더 기쁠 것 같다.
빈도라는 측면에서 보면 저자의 주장이 맞는 것 같다.
그리고 요즘 내가 가장 좋다고 느끼는 건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웃기는 것이다.
분위기를 좋게 만들고, 대화에서 적절한 한마디를 딱 던졌을 때 사람들이 빵 터지면 그게 도파민이 터지는 느낌이다.
어렵지만 한번 성공하면 쾌감이 있다.
앞으로 어떤 관계를 만들고 싶냐고 묻는다면,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같이 성장할 수 있는 관계다.
혼자의 의지력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적당한 긴장감을 주고, 내가 하기 싫을 때 하게 해주고, 반대로 그 사람이 하기 싫을 때 "나 이거 하고 있는데 같이 하자"고 할 수 있는 관계.
이 독서모임도 대호 형이 한번 해보자고 해서 시작한 거다.
나 혼자였으면 이 책을 펼치지도 않았을 것이다.
다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은, 이 책이 행복을 너무 물질적으로 환원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점에서 좀 아쉬웠지만, "작은 기쁨을 자주"라는 결론에는 고개가 끄덕여진다는 것이다.
나에게 지금 그 작은 기쁨은 매일 저녁 뛰는 삼십 분이고, 유튜브에서 새로운 교양 지식을 얻는 순간이고, 누군가를 웃기는 데 성공한 그 몇 초다.
거창한 게 아니라 그런 것들이 쌓여서 오늘이 어제보다 낫다고 느끼게 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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